慶州 良洞마을・玉山書院 訪問 [旅行]
普門団地에서 車로 25km 程度 北쪽으로 달려서 良洞마을에 到着하였다.
入口에 車를 駐車해 놓고 바라본 良洞마을의 風景.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500年前으로 돌아간 듯 하다.
집 담 안 감나무에 감이 예쁘게 열려 있었다.
一旦 事務所로 가서 案内板을 좀 보기로 했다. 고즈넉한 風景이다.
案内板에 나온 良洞마을의 地図. 제법 큰 規模이다.
良洞마을의 沿革이 나와 있다. 慶州孫氏와 驪州李氏를 中心으로 形成된 集姓村으로 500余年이 넘는 伝統을 갖고 있다. 이 中 4채의 家屋은 壬辰倭亂 以前에 지어진 말 그대로 古宅이라고 한다.
처음 가 본 곳은 心水亭. 참 오래되어 보이는 古宅이다. 모두들 関心있게 보았다. 壬亂 後의 建物이기는 하다.
欄干의 모습이 精巧하고 오래된 느낌을 준다.
雄壮하기까지 한 처마 및 지붕밑 骨格의 모습.
담 안쪽은 들어갈 수가 없다.
뒷편에 있는 오래 되어 보이는 土담.
이 집은 講學堂. 當時 書堂같은 곳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듯 했다. 한 할머니께서 菓子를 사라고 했다.
언덕 위에서 본 마을 風景.
고즈넉한 風景을 動画로 담아 보았다.
다시 내려와서 案内図를 보았다. 어디로 갈까나...
中央길에서 兩쪽으로 보이는 마을의 모습.
작은 실개천에 오리 한마리가 熱心히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길에는 이런 예쁜 우물도 남아 있었다. 復元한 듯 보이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杜谷古宅을 보러 갔다.
하지만 四角形의 杜谷古宅은 잠겨있어 보지 못하고 약간 올라가 東湖亭을 보았다.
出入門은 너무 옛스럽게 되어 있었다. 마당도 아담한 것이 예쁘고.
아내가 앉아서 한 장 찍었다.
하늘을 보고 계신 아버지. 뒷 담장과 잘 어울리시네~.
처마의 線이 美的 感覚이 너무 좋다.
내려와서 이번에는 길 反対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非舗装 道路라 먼지가 좀 많다. 謹庵古宅쪽으로 간다.
이건 탱자나무라고 하는데... 가시가 너무 많다.
暫時 길동무가 되어준 개.
謹庵古宅의 담과 門. 雰囲気가 너무 좋다. 안에는 역시 사람이 사는지 들어갈 수 없었다.
대나무 숲과 아버지.
謹庵古宅쪽에서 바라본 마을의 모습.
다시 내려왔다. 새로 짓고 있는 建物들도 제법 많았다.
고요한 마을 風景.
다시 駐車場 쪽으로 내려왔다.
이번에는 마을 入口에 있는 良洞初等学校에 가봤다. 지붕이 기와로 되어 있어 옛스러운 雰囲気를 나타내고 있다.
運動場 周辺에 심어져 있는 플라타너스.
어머니와 아내가 그네를 타고 있다.
푸른 하늘에는 제트기가 날고 있다.
커다란 衫나무들.
学校에서 좀 쉬다가 다시 마을을 보러 나섰다. 学校 付近에 있는 文化解説師가 있는 곳에 가서 良洞마을 全体 地図를 받았다. 그리고나서 못본 몇군데 더 보고 가기로 했다.
먼저 볼 곳은 香壇. 지나다 보이는 草家의 入口에 개 한 마리가 늠름하게 지키고 있다.
香壇의 入口. 朝鮮時代 李彦迪(1491~1553)이 慶尙監事로 在職할 때 母親의 病患을 위해 中宗이 지어준 집이라고 한다.
木材로 지은 멋진 家屋인데, 앞마당과 建物 앞部分 外에는 観覧이 어려웠다.
뒷편으로 가는 길.
香壇에서 본 良洞마을의 모습.
내려오면서 보이는 民家.
이번에는 方向을 틀어 觀稼亭으로 가 보기로 했다.
觀稼亭의 入口. 觀稼亭은 朝鮮 中宗때 文臣 愚齋 孫仲暾이 分家해서 살던 집이라고 한다.
入口 옆에 있는 작은 草家. 下人들의 집이 아니었을까?
大廳마루의 모습. 옛 香氣가 그윽하다.
建物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通路.
집의 안마당. 下人이 나와서 곧 마당을 쓸 것 같다.
옛스러운 建物의 뒷편.
정말 나무로만 만들어져 있다.
이쪽이 亭子. 여기도 心水亭같이 멋진 欄干이 있다.
東南向으로 지어진 觀稼亭. 여기서 말 그대로 너른 벌판의 穀食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쉬는 곳이라고 한다.
내려오면서 있는 멋진 대나무숲 터널.
良洞마을은 이 程度로 다 보았고 時間을 보니 3時頃. 저녁을 먹을 때 까지는 時間이 좀 있어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玉山書院을 더 보기로 하고 그쪽으로 向했다. 距離는 大略 10km 程度.
車를 세워두고 玉山書院으로 向했다. 옆門의 모습.
사람이 살고 있는 建物이 있었고 지나가니 書院 建物이 나왔다.
玉山書院의 本建物. 朝鮮時代의 4大書院中의 하나로 興宣大院君의 書院撤廃令에도 살아남은 47個 書院中의 하나이다. 4大書院中 가장 認知度가 떨어져서 그런지 観光客도 別로 없고 管理도 그리 잘 되고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옛날에는 漢陽에 있는 成均館이 国立大学의 役割을, 그리고 書院들이 地方의 私立大学 役割을 했다는데, 4大書院이면 地方의 名門大学였던 곳이다.
無邊樓라는 樓閣이 있어서 工夫하다가 저기 올라가서 밖의 風景을 보면서 쉬지 않았을까?
여기는 敏求齋라는 寄宿舍.
書院의 뒷마당.
碑閣의 모습. 안에는 오래된 碑石이 보인다.
歲月의 痕跡이 느껴진다.
玉山書院에 対한 案内. 宣祖 5年(1572年)에 設立되었다고 한다.
玉山書院 正門인 亦樂門. 아내의 썬글라스 色과 잘 매치가 된다.
書院 앞에는 이런 奇岩들이 있는 냇물이 있다. 멋진 나무도 情趣를 뽐낸다.
제법 깊어보이는 냇물과 작은 瀑布도 있다.
나무다리가 돌 間隔에 딱 맞춰져서 놓여 있다. 여기를 건넌 後 진흙湯에 빠져서 신발을 좀 버렸다...;;
시내 건너서 보이는 玉山書院의 모습. 過去 선비들이 学問에 熱中하다가 이곳으로 나와서 바람도 쐬고 詩도 읊는 모습이 想像이 된다.
- 다음에 継続 -
コメント 0